은행 파산 우려에 "리스크 관리형 자산 운영 필요"
지난 연말 기준 미국 내 16위에 랭크됐던 실리콘밸리은행이 무너졌다. 자산 규모가 2090억 달러 은행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규모 은행의 파산이고, 역사상으로는 워싱턴뮤추얼 다음 두 번째 규모에 해당하는 은행 파산이다. 실리콘밸리은행(SVB)에 곧이어 파산한 가상화폐 전문 시그니처은행과 지난 8일 자진 청산한 실버게이트 캐피털 등을 합하면 이달 들어 세 개 은행이 줄도산한 셈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왜 파산했나 간단히 답하면 예금주들에게 돌려줄 현금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예금 대량 인출 사태라고 볼 수 있는 이른바 ‘뱅크런(bank run)’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주 수요일 SVB는 약 20억 달러의 자금조달이 필요했다. 은행이 자금을 못 맞추고 있다는 소식에 이 은행의 주 고객인 벤처기업들이 돈을 빼기 시작해 인출 금액이 목요일까지 4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은행 고객들의 인출 요청이 짧은 기간 동시에 쇄도한 것이다. 정부는 현 사태가 금융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단 모든 예금을 보호 한도에 상관없이 보증하기로 했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보호 한도액은 현재 25만 달러지만 파장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고객들이 기업이었고 이들의 예금은 보호 한도액을 쉽게 넘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써는 일단 추가 위험은 막은 셈이다. ▶부분지급준비제도 뱅크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은행제도에 있다. 예를 들어 은행은 예금의 10%만 남기고 나머지를 대출할 수 있다. 이 경우 10%만 지급준비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예금주의 돈 100%를 현금으로 갖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평상시에는 예금의 100%를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십, 수백만 고객들의 예금과 인출이 ‘랜덤’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 고객이 인출을 원하면 다른 고객의 예치금으로 내어주는 식이다. 그런데 경기가 나빠지면 이런 상황이 올 수 있다. 실제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극히 단순화하면 이런 얘기다. 오늘 1000달러의 예금을 유치했는데 100달러만 금고에 넣고 나머지 900달러는 대출해줬다. 물론 이 대출금은 당장 회수되는 것이 아니다. 수중에 100달러만 갖고 있는 데 다음날 예금주가 1000달러 인출을 요구한다. 결국 내줄 돈이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러면 파산이다. 실리콘밸리은행의 경우 주 고객이 벤처기업들이다. 아직 수익을 내기보다는 지출이 많은 기업이다. 벤처자금을 받아 운영되고 있지만, 통상적으로도 예금보다는 인출이 많을 수 있는 구조였다고 볼 수 있다. 경기가 악화하면 지급준비금이 언제든 부족해질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팬데믹 이후 예금이 늘어난 많은 중소형 은행들은 지급준비금을 연방 국채로 갖고 있었다. 그런데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이들 국채값이 크게 떨어졌다. 팔면 손실이 된다. 실리콘밸리은행이 지난 수요일 20억 달러가 필요했다는 것은 채권을 손절매해 대차대조표에 그만큼 구멍이 났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400억 달러에 달하는 뱅크런까지 겹치니 결국 버티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금융위기로 확산 여부 물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실리콘밸리은행이 16대 은행이고 2090억 달러 자산 규모를 갖고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 이는 전체 은행들의 총자산 규모에 비하면 1%도 안 된다. 은행권 내 다른 기관들로 그 여파가 심각하게 전달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현재 개별 은행들의 포트폴리오 구조나 재무상태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급준비금이 부족한 상태로 들어가고 있는 중소은행들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중소은행들 역시 포트폴리오의 상당 부분이 손실을 본 상태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금리가 계속 오르면 은행들의 채권 포트폴리오의 가치 역시 계속 떨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팔기 전까지는 손실로 잡히지는 않는다. 장부상에서도 시장가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문제로 가시화되지 않는다. 그만큼 운영 리스크는 높아질 것이나 연준은 시중 은행들이 연준에 예치한 준비금까지 합하면 전혀 지급준비금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은행이 지금까지의 채권 포트폴리오의 일부 손실 정도는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자금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전망 은행주들은 당연히 타격을 받고 있다. 지금 시장은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이다. 문제는 은행제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다. 부분지급준비제에 근거해 은행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제도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현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뱅크런이 속출할 수 있다. 상상하기 싫은 시나리오지만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리스크 관리를 위해 각자에게 맞는 충분한 안전자산 비중을 가져가야 한다. 위험자산 비중을 너무 높게 가져가는 것은 아직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시장과 투자를 멀리하라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늘 강조하지만, 리스크 관리형 자산운용이 필요한 환경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시장 뉴스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대체로 후회할 행동이 된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각자의 투자목적과 목표, 리스크 성향과 수용 능력을 재점검하고 그에 비춰 포트폴리오를 리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켄 최 아메리츠 에셋 대표 kenchoe@allmerits.com리스크 관리형 은행 고객들 현재 은행제도 규모 은행